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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 창고/짧은 설교

종교에서 신앙으로 (사도행전 10:1-16)

by chrisbotti 2024.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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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가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 환상의 내용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하늘에서 보자기 같은 그릇이 내려왔는데

그 보자기 안에는 율법의 말씀에 따라 유대인들이 부정하게 여기는 각종 동물들이 있었습니다.

 

하늘에서 말씀하시기를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고 하였습니다(13).

 

그러나 베드로는 먹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자신은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은 언제든지 먹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런 일이 세 번이나 반복되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그릇은 다시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베드로가 이 환상에 대하여 고민할 때에 가이사랴에서 고넬료가 보내온 자들이

당도하였습니다. 그 때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고넬료의 집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베드로에게 보여준 환상은 무슨 의미입니까? 그것은 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전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먹으라고 하시는 음식을 베드로가 거부한 것은 막연한 자기 고집이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베드로에게는 항변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율법에서는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철저히 구분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부정한 것은 만져서도 안되고 먹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율법을 따라

음식을 거부하였던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생각한 것처럼 부정한 것과 정한 것에 대한 개념은 율법을 가지고 구분할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기준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율법에서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이란, 단순히 더럽다 깨끗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하나님 편에서 정하신 것입니.

 

따라서 신앙이란 내 쪽에서 하나님께 드린다고 해서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받고 안받고는 하나님 편에서 결정하는 문제입니다.

그 기준을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예수님으로 정하셨습니다.

 

고넬료에 대해서 성경이 말하기를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2)라고 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환상 중에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4)고 했습니다. 그래서 욥바의 베드로 사도를 청하여 말씀을 듣도록 명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본문 말씀을 가지고도 오해합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구제하면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신다는 식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기 이 본문은 그런 의미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기도와 구제 그런 차원이 아니라

베드로를 불러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 복음을 듣지 않으면 안된다는 차원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기준이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이로서 베드로가 가지고 있는 '유대인 대 이방인'의 개념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이냐 밖이냐 하는 것으로 구분될 뿐입니다.

 

고린도전서 10:23,24"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신앙입니다.

 

사람들의 생각은 모두가 자신이 잘되고 편안하게 하는 방향으로만 정해져 있습니다.

 

하나님이 성경을 읽으라고 요구하시는 것도 나에게 복을 주시기 위함이고,

기도하라고 하시는 것도 우리의 모든 고통과 어려움을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을 통해 복주시지만 우리가 진정한 신앙이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하는 것이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는 그것은 종교입니다. 취미 생활입니다.

우리가 기독교 신자가되는것은 종교에서 신앙으로 바뀌어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신앙 생활이란 단순히 교회에 다니는 정도로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다스림 속에서 살아지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의 요구에 순종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 역시 날마다, 매 순간순간마다 자기 자신이 죄인으로서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처참하게 죽어있는 현장을 보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자기를 위해 모든 것을 요구하는 종교에서 주님의 요구를 생각할 줄 아는 신앙으로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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